* 리뷰의 내용으로 인해 일부 핵심 줄거리를 파악하게 될 수 있습니다.

* 리뷰는 개인의 관점으로 작성하며 실제 주제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공연 관련 정보 및 스틸이미지는 인터파크 플레이디비에서 가져왔습니다.

 

 

내년 2월 12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입니다.

저는 11월 20일 공연을 보았습니다.

다이애나 역에는 박칼린 씨, 댄 역에는 남경주 씨, 게이브 역에는 최재림 씨가 출연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세 분이라면 그 어떤 조합보다도 최고의 하모니를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선택했는데, 충분히 만족할만한 공연을 보여 주셨습니다.

 

 

'넥스트 투 노멀'은 소수의 배우들만이 출연하는 뮤지컬입니다.

덕분에 2시간 여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각 배우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었습니다.

주 인물은 다이애나(아내), 댄(남편), 게이브(아들), 나탈리(딸), 헨리(나탈리의 남자친구), 의사(다이애나 담당의)입니다.

다이애나 역에는 박칼린 씨와 김지현 씨가, 댄 역에는 남경주 씨와 이정열 씨가, 게이브 역에는 한지상 씨와 최재림 씨가 더블 캐스팅됐으며 나탈리 역에는 오소연 씨, 헨리 역에는 이상민 씨, 의사 역에는 최수형 씨가 캐스팅됐습니다.

그럼 이만 소개를 마치고,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

평범한 것의 바로 옆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평범한 것일까요? 아니면 평범하지 않은 것일까요?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일상의 바로 옆, 그곳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담아내고 있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입니다.

 

극중 인물들은 평범해 보입니다.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평범한 4인 가정처럼 보이죠. 하지만 몇 개의 넘버를 거치고 난 뒤,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와 그녀를 위하는 방법이 헷갈리는 남편. 허상 속에 존재하는 아들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딸.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너무나 특이합니다. 자연스레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관객들의 눈에는 색안경이 자리잡습니다. 하지만 '몰입'의 순간, 서서히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은 결코 특이하지 않았죠. 평범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감정을 가졌으니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 평범하지 못한 걸까요.

 

 

 

 

극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스토리는 바로 다이애나와 댄의 관계입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다이애나에게는 '치료'가 필요하죠. 하지만 이 '치료'를 두고 다이애나와 댄 사이의 갈등은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갈등은 두 사람의 사랑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댄은 다이애나를 위하려고 하고 다이애나는 그런 댄의 마음을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두 인물의 생각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고, 이것은 두 사람의 사랑을 넘어서서 절정으로 치닫는 갈등을 피워냅니다. 

정상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행동이 점점 더 잦아지는 다이애나를 바라보는 댄의 시선은 안타깝습니다. 또 다이애나는 그런 댄을 따르며 치료에 전념하려는 모습도 보이죠. 아내를 돕는 남편과 그를 따르는 아내. 아무 문제 없어 보이죠. 자고나면 금방 해결될 것처럼 보이는 간단한 일상처럼도 보입니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마음 속에는 치료를 거부하는 강력한 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애나는 울부짖습니다. '나를 그냥 놓아두면 안 되냐'고.

 

 

 

 

다이애나가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그녀에게 '잊기 싫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잊어버릴까 봐, 또 잃어버릴까 봐 걱정합니다. 치료과정을 통해 먹어야 하는 약물이 그녀에게 그것을 빼앗아버릴까 걱정되죠. 그래서 의사와 남편 몰래 약을 먹지 않는, 그녀만의 반란을 벌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유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다이애나가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들입니다. 게이브라는 아들은 사실 태어난지 얼마 안돼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아들을 잊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허상 속에서 아들을 키워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녀의 허상 속 아들은 건장한 청년이며, 다이애나에게 자신을 잊지 말라고 절규합니다. 다이애나는 그런 아들만을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하지만 남편 댄은 그런 다이애나를 게이브로부터 떼어놓으려 합니다. 허상 속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다이애나의 행동을 병으로 여기며 치료를 도와주려 합니다. 우리들 눈에 댄은 극히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는 순간이죠. 다이애나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댄. 그는 진심어린 마음을 보여주지만 다이애나에게는 게이브에 대한 욕구가 너무도 강할 뿐입니다.

 

 

 

 

아들에 대한 다이애나의 이런 욕구에 지쳐버린 또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다이애나와 댄의 딸 나탈리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과 같은 존재입니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그녀는 화려한 피아노 솜씨를 뽐내며 명문대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누구보다 우월해 보이는 그녀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해결하기 힘든 상처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라면서 엄마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는 항상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아들만 좇을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점점 소외감을 느꼈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찾아온 강박증. 결국 그녀는 강박증에 시달리며 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꿈꿉니다. 그녀는 자신이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습니다. 엄마는 아들만 찾으며 나탈리를 바라보지 않고 아빠는 그런 다이애나만을 따라다니며 그녀를 치료할 방법만 찾을 뿐입니다. 의지할 곳 없는 나탈리는 얼마나 큰 슬픔을 안고 있을까요.

 

 

 

 

댄은 다이애나에게 새로운 의사를 소개시켜 줍니다. 그 의사는 심리적인 방법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에 뛰어난 역량을 가졌다고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다른 의사들이 다이애나를 진단하고 수많은 약물부터 건냈던 것에 비해 새로운 의사는 다이애나의 이야기부터 들어주려고 합니다. 다이애나는 의사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나탈리에게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헨리의 등장이죠. 헨리는 딱딱한 연주를 하는 나탈리에게 재즈의 장점을 역설합니다. 처음에는 헨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탈리도 헨리의 계속된 관심에 점점 그의 자유로움을 따라하고픈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무엇이든 정해진대로, 잘 해야만 한다는 그녀의 강박증세가 사그러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한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다이애나와 나탈리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느끼죠.

 

 

 

 

하지만 다이애나 가슴 속 깊이 자리잡은 게이브는 잊혀지길 거부합니다. 아들은 다이애나의 차료에 큰 걸림돌처럼 보이고, 댄은 그런 다이애나로부터 아들을 떠나보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게이브에 대한 다이애나의 끝없는 집착은 아들을 다이애나로부터 떠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냅니다. 바로, 다이애나의 뇌 속에서 말이죠.

나탈리에게도 시련은 찾아옵니다. 헨리가 가볍게 마약을 하는 것을 본 나탈리는 그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마치 그 자유가 마약으로부터, 환각제로부터 왔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엄마의 약상자를 훔쳐 계속해서 타락합니다. 헨리는 나탈리를 자제시키고자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탈리는 자신에 대해 뭘 아냐는 듯 헨리를 배척합니다. 해결될 듯 했던 갈등이 다시 깊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순탄한 길은 없는 걸까요.

 

 

 

 

의사는 다이애나가 점점 더 강하게 게이브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이애나에게 위험한 제안을 합니다. 뇌에 전기자극을 주는 충격요법을 써보자는 거죠. 그 방법을 통해 특정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면 게이브 때문에 느끼는 우울증과 과대망상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처음엔 대화를 통해 다이애나를 이해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의사의 달라진 태도가 이해하기 힘듭니다. 다이애나의 증세는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걸까요.

다이애나는 거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생각은 게이브에 의해 설득당하고 있으니까요. 남편 댄은 심각히 고민합니다. 언제나처럼 그는 다이애나를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이애나가 전기쇼크 치료를 받는 쪽으로 마음을 정합니다.

 

 

 

 

뇌에 전기자극을 받은 다이애나와 마약에 취한 나탈리는 환각 속에서 서로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 서로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자신의 증세 때문에 진정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탈리는 그녀를 이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느낍니다. 하지만 두 인물 모두 환각 속에 있을 뿐. 자신의 마음이, 서로의 마음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이애나는 무사히 수술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의사는 그렇게 말했죠. 하지만 다이애나는 기억 속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남편과 함께 지은 소중한 집. 딸 나탈리. 아들 게이브와 함께 이 많은 것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가족들은 그녀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조심 서서히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 게이브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기로 합니다.

다이애나는 이제 과대망상증에도 시달리지 않고 딸에 대한 애정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는 댄의 말과는 달리 그녀는 무언가 허전한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결국 게이브의 존재를 다시 알아버립니다.

 

헨리는 나탈리를 무도회에 초대합니다. 처음의 만남과 방황을 거쳐, 이제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탈리는 헨리의 초대를 거절합니다. 아빠 댄과 엄마 다이애나의 삶을 보며 자라온 나탈리에게 남녀 간의 관계는 우울함과 싸움으로 가득 찬 것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댄과 다이애나의 만남도 헨리와 나탈리의 만남처럼 평범했을 뿐입니다.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위했기 때문에 사랑했고 결혼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의 사랑처럼 '보통'의 사랑이었을 뿐입니다.

다이애나는 나탈리의 마음을 잡아줍니다. 나탈리가 무도회로 가는 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더욱 큰 결정을 합니다.

 

 

 

 

다이애나는 집을 떠납니다. 댄이 자신을 사랑하고 나탈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그녀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장 보통의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하지만 단호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럼 게이브도 이제 이 집에서 떠났을까요. 다이애나가 집을 떠나고, 게이브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게이브가 발길을 향한 곳은 다이애나가 떠난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빠, 댄이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아빠를 끌어안고 아빠도 아들에게 눈물을 흘립니다. 오랜 시간동안, 다이애나의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참았던 아들애 대한 그리움. 다이애나에게는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계기가 됐던 바로 그 그리움을 댄은 그저 참아왔을 뿐입니다.

 

 

누가 보아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 가족.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만남을 통해 평범하게 사랑했고,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며 가족이 된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하늘로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그리움. 과대망상증이라는 질병으로만 치부됐던 그것도 결국엔 누구나 가질만한 보편적인 정서였을 뿐이죠. 아니면, 그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가지는 모두가 비정상인 것일까요.

 

긴박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정상과 비정상의 벽은 허물어져 버린지 오래입니다. 자칫 잘못 했다간 '비정상'이 되어,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며, 마약을 해야 하고 뇌 속에 전류를 흘려보내야 할지도 모르죠. 과연 이 세상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요. 다이애나가 비정상이고 댄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과연 '정상'이라 믿었던 수많은 우리의 행동과 감정은 정석대로의 연주를 향한 나탈리의 강박증과 다른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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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rightstory